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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족들의 이야기

로힝야족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우리 모두의 정보 2020. 6. 27.

 개요

Rosing 사람들은 미얀마 서부의 Arasan 지방의 북부에 주로 거주하는 소수 민족이다. 그들은 주로 이슬람을 믿고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운다우, 부티다운, 아카프, 하트 다운, 카우 타오 주변에 살고 있다.

 언어

고야 언어는 미얀마의 아라칸 지방에 사는 고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현대적으로 묘사한다. 이 언어는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방글라데시 최남단 지역에서 사용되는 치타 언어와 언어적으로 유사하다. 고야 학자들은 고야를 아랍어, 하나 그와 나, 우르두어, 로마어, 미얀마 등 다양한 캐릭터로 번역했다.

 종교

2014년 인구조사에서 불교 신자인 미얀마의 87.9%가 주류 이슬람인 고야 종교는 주류 탄압을 불러일으켰고, 종교 문제는 이슬람 왕족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 이슬람 사원과 종교학교가 대부분 마을에 들어가고,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신도들에게 기도하고 여성들은 집에서 기도한다.

 인권침해상황

국제사면위원회의 발표로는 이슬람교도로야는 1978년부터 미얀마 군사정권 아래 각종 인권침해에 노출돼 많은 사람이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야 해방 운동은 심각하게 제한되었고, 대부분은 미얀마 시민권을 거부하고 다양한 형태의 강도와 세금지급, 토지 횡령, 재산 파괴로 고통받았다. 아라칸 북부 지방의 강제노동은 지난 10년간 감소했지만, 로야족은 여전히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1978년 미얀마군의 창민작전 이후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호야인은 20만명이 넘었다. 이 작전은 공식적으로 조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군사 작전은 민간인을 직접 겨냥하여 대규모 살인과 강간, 이슬람 사원 파괴, 종교적 박해를 초래했다. 1991년과 1992년 사이에 25만 명이 넘는 왕족이 방글라데시로 도망쳐 강제 노동, 즉각적인 정착, 고문 및 강간 사례를 전달했다. 왕당파들은 종종 매우 가혹한 환경에서 미얀마 군대에 의해 쓸모없는 강제 노동을 강요받았다. 로야 민간인의 강제 노동 과정에서 많은 다른 인권 침해 사례가 일어났다. 2005년 UNHCR은 방글라데시에서 충성스러운 송환을 도왔지만, 난민촌의 인권 유린 사건에 관한 주장은 그러한 노력을 위협하고 있다. 유엔의 이러한 노력에도 대부분의 로야 난민들은 미얀마 정권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방글라데시에 남아있다. 그들은 더는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그곳에서 어려려움에 직면해있다. 그리고 수천 명의 왕당파가 태국으로 도망쳤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을 따라 위치한 난민촌 9곳에는 11만 1000여명의 난민이 사는데, 2009년 2월 태국군이 로야 난민 190명을 바다로 데려왔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또 2009년 2월 인도 아시아 당국에 의해 구조된 다른 난민들은 태국군에 구타당한 뒤 바다에 버려졌다고 밝히고, 방글라데시는 미얀마 외교관들과의 회담을 통해 난민촌에 사는 호야인 9,000명을 송환하겠다고 밝혔다.

 관심

서울의 아시아인권센터는 호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여러차례 캠페인과 행사를 열었다. 2010년 8월 4일과 7일 인사동에서 거리 캠페인이 열렸고, 11월 27일 호야의 아이들을 돕기 위해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열렸다. 공포 콘서트가 열렸다. 인권단체들도 2011년 1월 26일 광화문에서 시민을 겨냥한 왕실에 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아시아 인권 평화의 발판은 아시아 인권침해와 분쟁지역에서 존엄을 지키고 삶을 바꾸기 위해 생활하는 현장 활동가와 피해자를 주목하는 시민단체. 로야야의 인권보고서는 2018년 초로야 인권보고서를 발간하고 호야의 인권보고서를 발표하며 호야의 평화언론 보도를 번역하는 등 운영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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