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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족들의 이야기

반달족에 대하여

by 우리 모두의 정보 2020. 7. 4.

반달족

반달은 오늘날 폴란드 남부에 살았던 동 게르만 민족의 종파로, 처음에는 역사에 등장한 뒤 유럽 전역으로 이주해 5세기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에 왕국을 성공적으로 세웠다.

게르만 민족의 위대한 운동 

반다르는 당시 주로 이 나라에서 아리아 기독교로 개종했다. 406 년에 반달은 이미 라인 강 유역의 갈리아 북부에서 로마자 표기된 프랑크 족 부족들로부터 저항을 받았다. 프랑크 족은 다뉴브 강을 건너 판노니아로 갔다. 2만 명의 반달이 전투에서 살해되었지만 그해 겨울 라인 강은 얼어붙었고 반달은 황폐해져 라인 강을 넘어 아키타 인으로 밀려 났고 갈리아를 통해 남쪽으로 밀려났다. 409 년 반달은 피렌 산맥을 건너 히스파니아 (현재 스페인)로 들어가 남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반달은 점차 이 지역을 넓히고 결국 어란에 굴복했고, 로마 제국은 이미 히스파니아에 정착한 데려니 부족들과 전쟁을 벌였다. 반달 족장인 군데릭은 아란 부족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반달 부족은 바이킹과 마찬가지로 히스파니아에 정착하여 해적으로 변모하여 북아프리카로 진격했다.

 

북아프리카 세미나 왕국 

429년 건델릭의 형제이자 후계자인 가이슬릭 은 약 8 만 명의 반달 부족이 이끄는 지브롤터 해협을 가로질러 북아프리카를 침략하기 위한 함대를 조직했다. 번다는 14개월 동안 북아프리카 도시 히포레기우스 성을 포위하고 결국 침몰시켰다. 이시기에 북아프리카 교회의 지도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히포레기우스 성에서 아리우스 이단자들의 도움을 구했지만 결국 가을 직전에 성에서 돌보다는 열병으로 사망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435년 반달이 로마와 동맹을 맺었지만 가이셀릭은 곧 동맹을 깨고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삼아 반달 왕국을 세웠다. 다음 35년 동안, 반월의 가이셀릭 왕국은 큰 배를 조직하고 지중해 연안의 로마 제국의 영토를 차례로 침략하고 점령했다.

로마는 아틸라가 죽자마자 반달에 대한 조처를 했는데, 그는 흉노의 침략에 헌신했다. 발렌티니야 3세는 친딸과 가이셀릭의 아들의 결혼으로 반달 부족을 전파하려 했으나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가 발렌티니야 인을 죽이고 황제가 되자 양측의 협상이 결렬돼 455년 반달 부족이 로마를 침공했다. 이시기에 레오 1세 가이슬릭과의 담론이 로마 약탈을 최소화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지만 확실하지 않다. 로마의 반달 침공은 그 자체로 로마인들에게 큰 충격이었기 때문에 반달리즘이라는 용어가 태어났지만 사실상 큰 학살과 반달리즘은 행해지지 않았고 반달은 로마의 부를 북아프리카로 운송함으로써 체계적으로 이전했다.

 

462 년까지 반월 아프리카 왕국은 북아프리카 전역과 시칠리아,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포함한 지중해의 여러 섬을 통치하는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게르만 왕국과 달리 그들은 지배적인 민족 집단과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고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그들을 억압했기 때문에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죽었다. 아리안 파 번다는 가톨릭을 억압했다.

 

반달 왕국의 몰락

477년, 위대한 반달 지도자 가이슬릭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후나릭이 왕위에 올랐을 때, 후나릭은 통치가 끝날 때 가톨릭 교회와 많이 종교를 심하게 박해했다. 반달 왕국은 가이슬릭이 죽은 후 점차 쇠퇴하여 동고딕 부족들이 시칠리아 대부분을 차지하도록 강요했다. Hunnerik의 아들 Hilderik은 종교의 자유를 선언함으로써 가톨릭에 우호적인 친로마 정책을 확장함으로써 비잔틴 제국과 평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533년에 젤리 머는 힐데릭을 몰아 왕좌를 장악하고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 1 세 반 누나 왕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베를리사리우스의 지휘하에 북아프리카를 공격했다. 벨리사리우스는 반월 세력으로부터 저항을 받았지만 결국 카르타고를 정복시켰고, 534년 반월 왕국의 두 번째 도시인 히포레기우스까지 비잔틴 군대에 항복한 겔 리머를 정복하고 반월 왕국이 무너졌다. 로마는 다시 그 지역을 장악하고 가톨릭 교회를 부활시켰다.

 

반다리즘

반다르 족은 해적 행위, 약탈, 반달리즘을 수행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고, 반달리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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